덕유산 1박 2일 종주

 

지난 겨울, 1박 2일간 덕유산을 걸었다. 흐리흐리한 하늘 아래 하얀 길을 걷자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바닷길 같은 눈 길을 원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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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은 길은 ‘육곤 종주’ 코스. ‘육십령’에서 출발해, 무주리조트 ‘곤돌라’에서 끝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육십령 고개에서 덕유산 줄기를 타기 시작해 할미봉-서봉-남덕유산까지는 내리 오르막. 그때부터 다시 걸어온 만큼의 거리를 능선길을 따라 걸으면 삿갓재 대피소가 나온다. 이튿날에는 완만한 오르막 능선을 타고 설천봉까지만 가면, 그곳에 있는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는 경로다. 오르내리막 중 하나를 곤돌라로 해결하는 셈이니, 첫 날 조금 고생해서 오르막만 올라가면 그 뒤로는 완만한 능선만 따라 걸으면 되겠거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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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산행 처음인 초짜 둘. 딴에 이런 저런 준비를 빵빵하게 해서 출발했는데도 엉성한 것 투성이었다. 등산 전 주까지만 해도 포근했던 날씨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며 영하 10도까지 뚝 떨어졌다. 산을 걷는 내내 북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왼쪽 뺨을 가격했다. 겨울 산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영하에도 얼지 않는다는 물통은 물 한번 빨아먹고 빨대가 얼어버렸다. 태어나 처음 껴본 아이젠까지 말썽이었다. 앞서 걷던 남편은 2mm도 안될 아이젠 고리 틈새가 다른쪽 신발 고리에 걸리는 바람에 두번이나 땅에 엎어졌다. 걷다 잠시만 멈춰서도 이가 달달 떨리는 영하 10도의 날씨에서, 남편은 신발을 벗고 맥가이버칼로 신발 틈새 사이를 벌려야 했다. 배낭에 넣어둔 물통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남편 등에선 고드름도 주렁주렁 맺혔다.

 

무엇보다 첫날 코스의 가장 큰 난관은 ‘서봉’이었다. 덕이 크고 넉넉한 산이어서 덕유산이라 이름 붙여졌다는데, 육십령 쪽에서 덕유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서봉이망할 서봉으로 통한다는 건 다녀와서야 알았다.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내리 오르막 경사를 올라가는데, 눈 쌓인 ‘하얀’ 서봉은 아무리 걸어도 저 먼발치였다. 다리는 무겁고 목은 마르고 빰은 시린데 무슨 놈의 봉우리가 계속해서 있는지. 굳이 눈 쌓인 겨울산을 걷겠다고 찾아가서는 ‘오르내리는 봉우리를 깎아서 평평하게 만들면 참 걷기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경사의 가파른 정도 만큼 마음도 쉴새없이 출렁거려 ‘대체 얼마나 더 가야하는걸까(분노)’, ‘끝이 있기는 있겠지(의심)’, ‘내가 어쩌자고 이 추운날 산에 와서 걷고있나(자책)’ 하는 마음까지 지나 보내고서야 무념무상 비슷한 상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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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꼬박 10시간을 걸었다. 남편은 출발 전 ‘설렁설렁 걸어도 다섯시간쯤 걸으면 산장이 나온다’고 했다. 그 시간 정보의 출처가… 네이버 지도와 축적을 기반으로 한 ‘자가 계산’이었다는 사실을 안 건 그 이후였다. 육십령에서 삿갓재 대피소까지는 13km 거리. 축지법을 쓰거나 날아가지 않는 이상 애시당초 다섯시간으론 택도 없는 거리다.

 

그래도 걷는 동안은 ‘다섯시간이면 된다’는 게 위안이었다. 오전 8시쯤 출발했으니, 느려도 한발씩 오르면 오후내 도착은 하겠지. 서봉까지 오르막 오르는 내내 그 마음 하나 붙잡고 걸었다. 한 땀씩 바느질 하듯 한 걸음씩 쌓아 겨우 도착한 서봉. 벅찬 마음에 시간 보는 것도 잊고서, 바람 덜 부는 양지바른 비탈에 자리잡고 앉아선 군대식 봉지비빔밥으로 점심도 해결하고 달달한 커피도 두잔이나 마셨다. 이제 두시쯤 됐을까 싶어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오후 3시 45분.

 

앞으로 걸어가는 것,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 외에 ‘등산을 그만두는 옵션’이 있었다면, 3번을 선택했을 것이다. 6시간쯤 걸어 다리는 이미 후덜거리는데, 걸어온 만큼의 거리를 다시 걸어가야 한다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걸어도 해가 지기까지는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 좌절했지만 걷는 것 외엔 달리 어쩔 도리도 없다. 그때부터는 해가 질까 두려운 마음에, 완만한 능선길까지 더해져 발에 모터단 듯 걸었다. 해는 산등성이 뒤로 넘어가고, 차가워진 공기에 계곡에선 뭉개뭉개 비구름이 일었다. 코와 뺨은 시렵고, 줄줄 흐르는 콧물을 장갑으로 훔치는데, 거의 뛰듯이 걷다보니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그나마 눈이 쌓여있어선지, 어둑어둑해지는 와중에도 길은 꽤 밝았다. 세상이 컴컴해지고, 일찌감치 주머니에 넣어둔 헤드랜턴을 이제는 정말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즈음, 고개 아래에서 천국같이 빛나는 대피소 불빛을 봤다.

 

처음 가본 대피소는 혼란스러웠다. 60대쯤 되어보이는 단체 등산객들이 거나하게 취해선형님 아우하다 말곤 주먹다짐을 하며 싸웠다. 조금 젊은 나이대의 등산객들이 싸움을 말렸지만 소용 없었다. 그 와중에도술 한 잔만 더 줄 수있느냐며 컵을 들고 돌아다니는 코 빨간 노인네도 있었다. 취사실은 단백질 굽는 냄새로 자욱했다. 누구는 삼겹살을 굽고, 누구는 스팸을 구웠다. 고기와 쌈장을 같이 볶는 이들도 있었다. 봉지밥과 라면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술에 취한 아저씨들은 소등을 한 뒤에도 한참이나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옆자리에 배치받은 아저씨는 ‘여기오면 사람들이 코를 크게 곤다’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하더니, 세상이 떠나가라 코를 골았다. 딱딱한 바닥과 코고는 소리에 밤새 거의 뜬눈으로 누워있었다. 번잡하고 낯설고 딱딱한 작은 세상에 누워, 대피소 문 바깥 산 속을 그렸다.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10시간을 걸어 들어와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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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눈 세상이었다. 대피소 바깥,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말을 잃었다. 첫날 마음이 바쁘고 걷기 바빠 휙휙 지나쳐 버렸던 풍경이었다. 흐리흐리한 하늘 아래, 눈길 닿는 모든 곳이 눈이었다. 겨울산에 눈이 이렇게나 많은 줄은 몰랐다. 온몸 가득 서리결정을 뒤집어 쓴 나무들은 하얀 산호초 같았다. 바람따라 산호초 군락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능선을 따라 하얀 파도가 일었다.

 

산길에도 발자국 없는 포슬포슬한 눈이 쌓여있었다. ‘상고대’라는 단어도 전날 산장에서 처음 들었다. 서리 결정이 나무에서 얼어 하얀 옷을 만들고, 바람에 따라 날아오는 눈가루가 하얀 결정 위에 쌓이고 쌓여, 나무 가지들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두툼하게 자라고 있었다. 손으로 툭 치면 눈가루가 후두두 날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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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도 만만치는 않았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라 첫날만큼 경사가 심하진 않았지만, 북쪽 능선에서 눈보라가 쉴새없이 불었다. 기온도 어제보다 더 떨어진 듯 했다. 몸 가릴 곳 없는 능선에선 눈을 뜨기도 쉽지 않았다. 쌓인 눈 위에서 걷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다. 발을 디뎠다가 무릎까지 빠지기도 여러번이었다. 가파른 경사에선 양 발에 힘을 주고 옆으로 발을 찍으며 걸어 올랐다. 내리막에선 발에 힘을 주기도 힘들어, 미끄러지듯이 걸었다. 그 와중에도 고개를 들면 눈 앞으로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앞서걷는 남편만이 유일하게 현실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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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눈, 얼음 결정이 지배하는 고요한 풍경에 취해 걷는건 몇 시간 가진 못했다. 토요일 오후, ‘눈꽃’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 곳곳에서 능선을 타고 우리가 걷던 길로 모여들었다. 덕유산 구간에서 가장 높은 향적봉을 지나 곤돌라가 있는 설천봉에 가까이 갔을 즈음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양쪽 길 모두 사람이 많아 한 줄을 서서 걸어야 할 정도였다.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와 ‘눈꽃’을 구경하는 인파였다. 향적봉대피소 산장 처마 밑은 대피소 매점에서 산 컵라면을 먹는 이들로 가득했다. 곳곳에서 셀카봉으로 눈꽃 인생샷을 남기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고서 쌓인 눈 위를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하루 꼬박 걸어 올라간 1470미터 설천봉에서 땅까지는 15분이면 됐다. 곤돌라가 있어 더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산이 꼭대기에 꽁꽁 숨겨둔, 비현실적인 세상이 땅과 너무 가까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17-10-28T16:00: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