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산 블라스  San Blas – 쪽빛 바다, 365개의 작은 섬

파나마를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주로 ‘파나마?’ 라고 미완결 질문형 문장을 던진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그 다음, 사람들은 파나마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 머리 속으로 세계지도를 더듬더듬 그리다가, ‘파나마엔..  파나마 운하가 있지?’ 라고 말하는 것이 정규 코스이다. 그럼 나는 파나마 운하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대서양에서 열지어 대기하던 거선이 파나마 운하를 통해 태평양으로 건너가던 순간의 감동을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파나마를 떠올릴때 내 머리에 바로 떠오르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내 장황한 설명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할까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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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북쪽, 쪽빛 캐리비안 바다의 작은 섬에서 이틀간 지낸 이야기이다.

파나마 시티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린다. 그럼 어느 순간 건물이 뜸해지기 시작하고, 결국 사람이 지은 건물이 없어진다. 그리고는 빌딩만한 키에 집채만한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이 빽빽한 열대 우림이 시작된다. 그 열대우림 사이로, 이차선 도로가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덩그러니 뻗어 있다. 그 굴곡 심한 도로를 따라 계속 달리다 보면, 캐리비안 바다에 도착한다. 배를 갈아타고 수십여분 가면 섬에 도착한다.

휴양지로서 아득히 떠올리곤 하는 캐리비안 바다의 북쪽에는 멕시코 칸쿤, 쿠바가 있다. 그리고 휴양지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파나마는 캐리비안 바다의 남쪽에 있다. 캐리비안 바다는 대서양에서 보기에 움푹 들어가 있는 중미 대륙과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등 큰 섬들이 둘러싸고 있어, 수영장처럼 잔잔하다. 이 캐리비안 바다의 파나마 부근에는 365개의 작은 섬들이 그리 멀지 않은 간격으로 흩어져 있다. 큰 섬은 축구장만 하고, 작은 섬은 집 몇 채 겨우 지을 만 하다. 사람이 살기도 하고 살지 않기도 한다.

섬들은 평평하기 때문에 돌아다니기 수월해서, 작은 섬은 오분이면 섬을 다 돌아보고 더 돌아볼 것도 없어진다. 섬에는 차도 도로도, 인터넷도 티비도 없고, 야자수만 가득하다. 사람이 사는 섬에는 나무로 벽을 세우고 야자수잎으로 지붕을 덮은 집만 몇채 더 있을 뿐이다. 그 섬들은 아무런 생각, 계획, 고민 없이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꿈의 장소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르게 말하자면,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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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수 있는 일 1 ]

해먹에 누워 있는다. 해먹은 몸을 착 감싼다. 그늘에 있으면 바닷바람이 은근히 차지만, 해먹 속에 쏙 들어가면 바람을 피할 수 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다 보면 잠이 온다. 오는 잠을 물리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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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수 있는 일 2 ]

해변에 누워 있는다. 섬이 작아서 사실 섬 전체가 모래사장 해변이다. 햇볕을 피하고 싶으면 야자수 그늘 아래에, 햇볕을 쬐고 싶으면 야자수 그늘을 벗어나 누워 있으면 된다. 앞으로 누웠다가 뒤로 누웠다 할 수 있고, 앉아 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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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수 있는 일 3 ]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종을 울린다. 주먹만한 크기의 조그만 종이지만, 섬 어디에 있든 그 소리를 못들을 염려는 없다. 종이 울리면 사람들이 좀비처럼 모여들어 함께 밥을 먹는다.

모든 섬의 출입과 숙식은 구나 얄라라라는 이름의 원주민에 의해서 전적으로 관리된다. 원주민이 직접 잡아온 생선과 육지에서 구매한 쌀, 채소를 요리해서 준다. 단촐하지만 섬에서 먹을 건 이것 뿐이니, 직접 바다에 나가 작살로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먹어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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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수 있는 일 4 ]

다른 섬을 방문해 본다. 시간 맞춰 다른 섬을 방문하는 배가 있다. 다른 섬은 원래 있던 섬과 거의 모든 측면에서 동일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다던가, 섬의 크기가 다르다던가, 야자수 개수가 다르다는 것에서 기분을 전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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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수 있는 일 5 ]

스노클링을 한다. 옷을 아무데나 벗어두고 바다로 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의식주를 충족하며 무념무상의 상태를 즐기면 된다.

 

이 섬에서는 문명의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문명을 누리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다. 침대 매트리스는 바닷바람의 습기를 먹어서 눅눅하면서, 동시에 모래 때문에 까슬까슬하다. 개미가 집 안 어디에나 있다. 바닷물 담수화의 한계로, 물에 여전히 소금기가 느껴져, 땀을 흘린 후 샤워를 해도 개운하지 않다.

그래서 다시 도시로 돌아오면, 마음은 복잡해지고, 또, 안정된다.

2017-05-21T11:56:45+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