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 아루아코족의 수도, 나부시마케

 

아루아코족 이야기는 아내로부터 처음 들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있을 무렵, 아내는 코이카 사업 취재를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코이카는 콜롬비아 북부 산골마을의 한 원주민 부족의 카카오 재배 및 판매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코이카는 그 사업을 스스로 성공적이라 평했다. 사업은 원주민의 소득 창출에 그치지 않고, 원주민 내부문화를 건설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보였고, 아내는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결국 회사-코이카 간 예산 분담 실패로 취재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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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는 코이카가 현지에서 찍어 보내준 사진 한장에 꽂혀 버렸다. 사진 속 남자들은 조선시대 관모처럼 생긴 흰색 모자를 쓰고, 남녀 가리지 않고 순백색 상하의를 두르고 있다. 모두 비슷한 모습의 가방을 측면으로 메고 있다. 아내는 새로운 세계의 발견에 흥분했다. 야구모자로, 청바지로 수렴해 가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개인들은 그 수렴의 흐름에 몸을 내맡길 따름이다. 이 수렴의 세상에서 옷은 만들어진 제품 중 골라서 사서 입는 방법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공장에서 만들 리 없는 이런 옷을 일상적으로 입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아마도 작동방식이 다를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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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아루아코족의 수도, 나부시마케이다. 나부시마케는 버스로 한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청바지 입는 예사로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중 나부시마케와 가장 가까운 도시는 바제두파이다. 밤 버스를 타고 도착한 바제두파에서, 밥때가 되어 발길대로 들어선 음식점의 한 벽면에는 아루아코족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심오하고 공명정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인물의 사진이다. 이런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우리는 아루아코족의 수도를 가는 중이긴 한데….  아무 계획이 없다! 막상.. 마주친다면?  나는 아마, 로씨엔또…  라고, 당신의 삶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해버릴 것 같았다.

 

도시를 거니는 중에 가게를 기웃거리는 아루아코족이 몇몇 보였다. 그들은 한눈에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하얀 의복의 그들끼리 있었고, 뭔가를 사러 범인들의 세계를 들른 듯했다.

 

나부시마케로 가는 승합차를 타려면 다음날 새벽까지 있어야 했고, 바제두파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날 밤, 아루아코족을 다룬, 몇년 지난 SBS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설화적이었다. 현실에 없을 법한 동화적 이야기였다.

 

그들은 원래부터 산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콜롬비아 북부 평원에 넓게 터잡고 있었는데, 하얀색 인간들이 총, 균, 쇠를 갖고 바다를 건너오더니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산으로 도망갔다. 그곳은 콜롬비아 씨에라 네바다 라는 산군이다. 최고 봉우리가 5,700미터에 달하는 이 산군은 높이에 어울리지 않게 콜롬비아 북부 대서양 해안에 근접해 있다. 바다가 끝나고 육지가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산군이 치솟아올라 그 꼭대기는 눈으로 덮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하얀 인간들은 평원을 지배했고, 그들은 험준한 산속에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산 아래와는 단절된 사회를 만들었다. 스스로 일군 작물을 먹고,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들만의 언어와 세계관으로 서로 얘기하고 세상을 이해했다. 가끔 산 아랫동네에 대한 호기심으로 산 중턱까지 내려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도시의 모습을 바라봤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정도에 그쳤다. 아랫세상이 일련의 혁명과 세계대전, 세계화로 급격히 변태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왕조에서 식민지를 거쳐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동안, 그들은 오롯이 그들만의 역사를 밟아왔다. 그렇게 400여년이 흘렀다.

 

삼십여년 전 아루아코족은 아랫세상과 교류를 재개했다. 시에라 네바다 산꼭대기의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시에라 네바다는 세계의 심장으로, 꼭대기 눈의 용화는 온 세상의 변화가 집적되어 산꼭대기를 통해 발현된 것이었다. 그들은 아랫세상의 어리석은 아우들이 어머니 자연을 진노케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작게는 콜롬비아 정부, 크게는 온 세상의 난개발이 그들 뒤에서 말없이 수백년간 그들을 지켜주고 있던 산을 녹여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랫세상의 아우들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경계를 허물고 한발 나섰다. 그들의 이야기를 바깥세상에 전파하고, 또 콜롬비아에 있는 대학에 청년들을 유학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아루아코족 대부분은 깊은 산중에 살아가고 있다.

 

 

바제두파에서 새벽 봉고를 타고 푸에블로베죠 라는 마을에 내렸다. 여기서 나부시마케로 가기 위해서는 사설 지프트럭을 타야 했다. 마침 자리가 하나 났다. 나부시마케로 가는 화물을 짐칸 뿐 아니라 좌석에도 가득 실은 지프였다. 지프 주인은 앞좌석에 자리 하나가 있다고 했고, 그나마 짐에 침범당해 온전치 못했다. 그곳에 나와 아내는 구겨 탔다. 아내가 내 무릎 위에 탔고, 둘다 옴쭉달싹 못했다.

 

나부시마케로 가는 길에서 나는 지프차의 능력에 감탄했다. 길은 만들다 말았든지, 산사태 후 복구하지 않았든지, 결과적으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지프차 운전기사는 그 돌구덩이 길 가운데 단 하나의 경우 밖에 없을 것 같은, 유일하게 진행가능한 경로를 찾아 달리는 것 같았다. 지프차는 디스코팡팡처럼 위아래로 흔들렸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신기했다. 짐칸에 쑤셔 넣어두었던 기타 목이 꺾어버려 기타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 나중에 들어 보니, 그 도로 상태는 광물, 관광자원 확보를 위한 콜롬비아 정부의 개발의지와 급격한 인구유입과 산악개발을 저지하려는 아루아코족의 의지 간의 균형을 말해 주고 있는 듯 했다. 2016년말 현재 그 균형점은 지프차를 타고 고통스런 흔들림과 배김을 두어시간을 견뎌내면 아루아코족의 수도에 도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개발 쪽으로 균형이 치우친다면, 그 도로엔 시멘트가 깔리고, 버스와 기계장비가 드나들게 될 것이다.

 

 

버려진 것 같은 도로가 끝나면, 넓은 지역이 거짓말처럼 정비되어 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오늘 하루 묵을 곳으로 걸어갔다. 잘 정돈된 울타리 잔디 사이로  걸어가다가, 개울에 가로놓여진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울타리를 넘어서면 우리가 묵을 곳이 나왔다. 햇살은 따듯하고 하늘은 파랬다. 사방이 조용했다. 집은 보였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양떼가 길에서 평온히 풀을 뜯고 있었다.

 

아루아코족 천주교 신자가 운영하는 호스텔이었다. 짐을 내려놓고 멍하니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청바지를 입고 있었던 호스텔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부시마케는 신성한 땅이자, 행정수도에 가깝다고 했다. 거주를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행정적, 종교적 필요에 따라 임시적으로 나부시마케에 모였다가 헤어진다고 했다. 그래, 그렇구나…     이제…. 뭐하지? ㅋㅋㅋㅋ

 

그곳은 관광지가 아니고 관광포인트도 없다. 머리를 긁적긁적 하다가, 날씨가 좋으니,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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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에 아루아코인이 지나가곤 했다. 어른도 있었고, 꼬맹이도 있었다. 말을 타고 지나가기도 했다. 모두 하나같이 우리를 외면했다. 적어도 꼬맹이들은 호기심에 우리를 바라볼 법도 한데, 독립투사같은 단호함으로 우리를 바라보지도 않고 지나쳐 지나갔다.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어른들과 달리 꼬맹이들이 호기심을 감추고 있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외부인에 대한 경계를 교육시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우리는 이 세계의 규칙을 전혀 몰랐다. 나는 무난한 회색 티셔츠와 남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일탈한 비행청소년 마냥 몸둘 바를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예의를 지킨다며 자기 옷 중에 원주민 복장과 가장 비슷한 옷을 꺼내 입었다. 사진기를 꺼내 그들의 사진을 찍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무례함같이 느껴졌고, 풍경 사진 먼발치에 꼬맹이 한 명의 뒷모습이 찍혔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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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돌담에 도착했다. 돌담 앞에는 말이 풀을 뜯고 있었다. 말의 주인은 말을 여기 세워두고 저 돌담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돌담 안쪽에는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은 호스텔 주인이 ‘뿌에블리또’라고 부르던 곳이었다. 스페인어로 ‘뿌에블로’는 ‘마을’이고, ‘뿌에블리또’는 ‘마을(작은버전)’ 정도로 해석된다. 나부시마케 안의 또 다른 작은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정부종합청사….라 할수 있을까?! 이곳이 바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아루아코족이 최고위 의사결정을 위해 모이는 곳이었다.

 

우리는 돌담을 넘어서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돌담은 허리춤 높이였다. 우리는 땅에 금만 그어져 있었어도 그 선을 스스로 넘어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방인이었고 규칙을 몰랐지만, 담은 기본적으로 진입을 막기 위해 있는 것이다. 한 노인이 담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했고, 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흙벽 건물들이 촘촘히 지어져 있었다. 입구쪽에서 더 안쪽으로 진입하는 건 일단 보류했다. 지도자의 허가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 회의 중이라 바쁘니 허가를 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뻘쭘하게 문가에 서 있었다. 청년부터 노인까지 아루아코 사람들이 주변에 슬금슬금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갖고 삼삼오오 무리지었다. 우리와 가까이 서 있긴 하지만 거기 있는 건 우리 때문이 아니라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를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아이도 있었다. 우리는 담 안으로 진입했고, 그만큼 정도는 마음의 경계도 연해진 듯 했다.

 

그런데..  한시간이 넘어서도록 허가는 나지 않았다. 안쪽에서는 전국모임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콜롬비아 전역에 나가 있는 유학생, 활동가가 오늘 이곳에 모여 있다 했다. 중요한 일인 듯했고, 왜 진입을 허가해주지 않느냐 독촉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 회의 하느라 지도자에게 진입 허가를 해주냐고 물어볼 시간조차 없는 게 분명했다. 한시간 즈음 지나니 그곳에 서 있는 것이 더이상 어색하지 않았고, 그냥 지루했다. 배가 너무 고팠고, 숙소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다시 왔다. 허가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호세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할아버지는 모임 참가를 위해 옆마을에서 모임 장소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할아버지는 하얀 전통복이 아닌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처럼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고 말을 걸었다. 우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지도자에게 말해 주겠다 했다. 그리고 모임 장소까지 데려가지 못하지만 안쪽에 가게가 있으니 그곳에서 뭐라도 하나 사서 돌아가면 되겠다고 했다. 우리가 안쪽도 구경하고, 또 물건을 삼으로써 다른 아루아코인의 경계심도 풀어주려는 배려인 듯 했다.

 

가게 앞에서 할아버지와 지도자가 서로 만났다. 아루아코인의 인사법을 보게 되었다. 아루아코 남자는 성인이 되면 항상 말린 코카잎을 들고 다니면서 씹는다. 이 코카잎을 들고 다니기 위해 항상 옆으로 매는 전통 가방을 들고 다닌다. 아루아코 여성들이 직접 양털로 짠 가방이다. 셔츠를 입은 호세 할아버지도 코카잎 가방을 두르고 있었고, 지도자를 만나자 미소를 띄고 코카잎을 한움큼 꺼내 그 지도자의 가방에 넣어주었다. 그 지도자는 환하게 웃었다. 코카잎을 씹는 중이라 모든 이가 초록색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에서 코카잎을 가득 꺼내 할아버지의 가방에 넣어 주면서 다시 크게 웃었다.

 

두 분은 아루아코어로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를 가게로 안내했다. 가게는 시골 구멍가게였고, 음료수를 하나 샀다. 그리고 호세 할아버지에게 인사하고는, 다른 세계를 거니는 듯 붕 뜬 기분으로 뿌에블리또 건물 사이를 돌아나왔다. 나는 마치 그 모임에서 용을 잡으러가는 용사와 마법사 파티를 구성하고 있을 것 같은 신비감에 사로잡혔다.

2017-10-07T18:43:28+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