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 – 사울

 

아루아코족의 수도 나부시마케에서 하룻밤을 잤다. 지옥의 지프를 타고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이틀 연속 타고 싶지 않았던 지프이지만 나부시마케에서 더이상 할일이 없었다. 마을 이름은 뿌에블로베죠이다. 버스 시간에 늦어, 하루를 그 마을에서 묵어야 했다. 짐을 숙소에 두고 거리를 걸었다. 뿌에블로베죠는 아루아코족 80%, 그 외 20%가 살아가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흰 옷을 입고 산 속에 살아가는 아루아코족과 청바지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접점이다. 마을은 콜롬비아의 다른 지역과 비슷했다. 레스토랑에서는 스페인 음식 맛없는 버전을 팔고, 약국에서는 양약을 판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주 거리에는 아루아코족 보다는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더 많다. 사람들은 흔치 않은 구경거리인 나와 아내에게 관심이 많았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전부 교대로 나와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사진을 함께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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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지나가는 아루아코족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아루아코인과 서양식 건물이 어색하게 어울려 있었다. 걷던 중에 거리 한편에 아루아코인들이  한 건물 앞에서 삼사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건물 안으로도 들락날락 했다. 저긴 뭘까 궁금해하던 차였다. 한 아루아코인이 말을 걸었다. 나와 아내는 아루아코인이 먼저 말을 걸어서 너무 놀랐다. 하지만 태연하게 대화했다. 그곳은 사울이라는 아루아코인의 선거사무소였다. 사무소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우리를 중심에 두고 환호했고 ㅋ, 사울은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며 반가워했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내의 이야기 속 인물로만 들었던 사울과의 우연한 만남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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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이야기는 길지만 흥미롭다. 아내가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취재 준비를 할 때 그에 대해 들었었다. 사울은 코이카가 아루아코족과 함께 진행하는 소득지원 사업의 아로아코측 책임자였다. 사울은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사울은 아루아코족 아빠와 스페인 간호사 엄마 사이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산속의 아루아코 사회에서 살았고, 청소년기를 스페인에서 보냈다. 흥미로운 점은 사울은 결국 아루아코족이 되고자 결심했다는 것이다. 사울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사울은 스페인에서 시에라 네바다 깊은 산속으로 돌아와 아루아코족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오랫 동안 아루아코족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은 아루아코족의 유망한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아루아코족의 정치력 확장을 위해, 아루아코족의 대표자로 뿌에블로베죠의 시장 후보자로 나서게 되었다. 시장후보자로서 사울의 의미는 상당하다. 사울은, 수백년 전 스페인 침략으로 원주민들이 노예가 되거나 척박한 땅으로 쫓겨난 이후, 침략자의 후예들이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 정치에 한 발을 딛는 최초의 원주민이라는 그런 의미가 있다. 사울은 한국에도 다녀간 적이 있다. 사진 속 사울은 가나안 교회 간판 옆에 서 있었다. 나는 회사 연수 시절에 신입직원들 단체로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2박 3일간 생활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변혁을 이루기 위한 근본적인 가치들, 개혁정신과 사랑을 가르쳤다. 나는 그 3일의 교육에 냉소적이었고, 3일을 지내고 돈의 가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모든 것을 잊었다. 사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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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은 시장 선거에서 졌다. 나와 아내가 그곳에 도착한 건 선거에서 진 다음날이었다.  선거사무소는 마지막 날, 해체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선거사무소는 어수선했다. 그 마을은 아루아코인이 80%, 산술적으로는 사울이 질 수 없다. 아루아코족은 비상식적인 선거결과에 분노했다. 당시에 타임지는 사울이 나간 선거를 콜롬비아의 선거부패 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상대 후보는 콜롬비아 고위 정치인의 지지를 등에 업은 사람이었다. 투표자 중에 이미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고, 외부에서 버스로 단체로 실어온 사람들이 투표를 했다고 했다. 뿌에블로베죠는 시에라 네바다 자원개발을 위한 길목에 있고, 이 지역은 콜롬비아 정부에게는 자원확보를 위해, 아루아코족에게는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둘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이번 선거는 아루아코족에게 답답하고 더러운 정치적 벽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다음 선거는 어떻게 될까?

 

2017-08-16T23:23:1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