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이야기 – 아루아코인의 초대

 

한 아루아코인이 사울의 선거사무소를 지나던 길에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놀랬다. 이때까지 아루아코인은 우리를 외면했고, 나와 아내는 아루아코인과 교류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접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준 그는 선거사무소에 우리를 소개시켰고, 우리는 그 덕에 사울과 인사를 했다. 선거사무소를 나오자 그는 자신의 집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의 이름은 후안 까를로스다. 스페인식 이름인데, 아루아코식 이름은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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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그의 가족과 며칠을 지낸 후, 그와 함께 신성한 땅에 들렀을 때 찍은 사진이다. 그의 가족과 몇 일을 지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그가 마모라는 사실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바제두파에서 하루 묵으며 보았던 SBS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마모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났다. 마모는 아루아코족의 정신적 지도자로, 선대 마모로부터 마모 후보자로 지정되고 어릴 때부터 교육되어, 종국에는 경쟁을 뚫어야 선정되는 자리이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마모는 장기간  빛이 약한 동굴에서 생활하고 소금 없이 음식을 먹는 등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만났을 때는 그가 마모라는 걸 몰랐다.

 

그는 우릴 집으로 안내하는 길에 일본인 사토시 이야기를 했다. 그 일본인은 자신의 집에 보름 동안 묵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일본인에게 나중에 돌아와 쉴 수 있도록 땅을 한뙈기 주었다고도 했다. 나중에 그의 가족에게 들은 바로는, 그 일본인은 인류학자로, 그의 집에서 이 가족을 관찰했던 것 같다. 그는 보름간 그 집에서 항상 요리를 함께 하면서 그 집을 떠나지 않았지만, 워낙 조용해서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하여, ‘빠따 뜨라빠’, ‘천 발’ 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했다. 집은 주 도로에서 걸어서 십오분 정도로, 멀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 도로에서 한 골목만 벗어나도 길은 산길로 변했고, 나무가 많아졌다.

 

집을 들어서자 가족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후안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후안의 여동생이 아내를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내에게 들어보니, 그때 후안의 여동생은 아내를 데리고 숲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아버지 하늘과 어머니 땅의 은혜에 대해,  사람들의 무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를 다시 주 도로로 안내해 주었다. 자기는 괜찮으니, 우리만 괜찮으면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호스텔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짐을 메고 그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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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의 집으로 갔을 때, 후안은 그의 친구와 함께 담벼락에 앉아 집앞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우릴 보자마자 ‘치니~또’라고 했다. 친근감의 표시였을까? 치노는 중국인을 이야기하고, 치니또는 중국인을 귀엽게 이야기하는 버전이다. 남미에서는 모든 아시아인을 보통 치노라 부른다. 후안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우릴 부를 목적이 아닐 때도, ‘치니~또’ 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웃곤 했다. 나는 ‘아루아키~또’라고 대응해줬고, 그는 크게 웃었다. 내 대응은 자승자박이었던 걸까? 그는 이후로 끊임없이 ‘치니~또’라고 했다. 후안이 치니또 타령을 그만둔 건 우리가 한국에서는 옛날에 몸보신을 위해 보신탕을 먹었다고 이야기해준 이후이다. 후안은 그 이야기가 흥미로웠던지,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치니~또’ 대신 ‘소파 뻬~로’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소파 뻬로’는 개 수프라는 의미이다. 후안은 계속 소파 뻬로로 중간중간 추임새로 넣었고, 딱히 할말이 없는 우리는 더이상 소파 뻬로에 대해 대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후안의 소파 뻬로는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후안 까를로스를 ‘후안까’로 불렀다. 후안 까를로스의 줄임말이다. 후안은 그 집에서 위엄을 담당하는 느낌이었다. 후안은 3남1녀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첫째 형, 여동생, 남동생과 친근하게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일단 집에 잘 있지 않았다. 후안은 조카들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집에 있을 때도 조카들이랑 놀아주는 법이 없었다. 후안이 마모라는 걸 우연히 조카들과 이야기하다가 듣게 되었다. 나와 아내는 놀라서 ‘후안까가 마모라고?’ 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정말?!’ 이라고 물어보았다. 조카들은 ‘마모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삼촌이 마모는 맞아’ 하는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안은 보통 ‘소파뻬~로’만 반복했지만, 아루아코의 이야기에는 진지했다. 우리에게 아루아코의 철학을 설명해 주었다. 후안은 세상의 중심 씨에라 네바다의 흰 눈이 녹는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했다. 콜롬비아 정부의 난개발이 세상에 불러올 수 있는 재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지역의 세금의 대부분이 아루아코인으로부터 나오지만 아루아코인에게 돌려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루아코족이 진행하고 있는 땅 판매 사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자본이 있고 뜻을 함께하는 외국인들이 땅을 구매하도록 해서 콜롬비아 정부의 개발을 막으려는 사업이었다. 후안은 아루아코족의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답이 잘 보이지 않는 아루아코의 미래를 이리저리 고민해볼 것이다. 한번은 후안이 스스로 자신은 끝도 없이 일한다고 말하길래,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때까지 후안이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안은 아루아코의 미래를 고민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백수. 청년실업자. 후안이 고민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번뜩 떠오른 단어다. 후안은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이견 없이 실업자 통계에 포함되었을 사람이다. 스스로는 워크홀릭인데, 국제 기준으로는 실업자인 것이다. 후안의 가족을 몇일 유심히 본 바로는, 후안네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은 후안의 엄마가 시내 병원에서 파트타임 간호사로 벌어오는 돈이다. 자급자족을 벗어나 도시에서 전기와 수도, 공공의료를 활용하며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후안네 가족의 도시에서의 삶은 전적으로 후안의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후안에게서 손에 흙 안묻히던 허울좋던 조선시대 선비가 겹쳐졌다. 아루아코가 아래마을과 교류한지 삼십여년, 뿌에블로베죠에는 많은 아루아코인들이 도시를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루아코족의 현재는 역사의 어디쯤일까? 그 속에서 후안은 아루아코족의 미래를 항시 고민하는 정신적 지도자 마모의 모습일까, 아니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친구와 공상만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백수 둘째아들일까?

 

후안은 한 친구와 항상 함께 했다. 우리는 둘이 관계가 궁금했다. 아무리 친해도 7일 24시간 같이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러나 우리가 보는 동안 둘은 함께였다. 위 사진에서도 후안의 왼쪽에서 함께하고 있다. 후안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둘은 함께 있었다. 후안이 집에 있을 땐 그 친구도 함께 있고, 없을 땐 그 친구도 없었다. 후안이 집에 와서 잘 때에는 그 친구도 같이 와서 잤다. 둘은 조용 조용히 서로 이야기했다. 나는 잠깐 혹시 종.. 같은 분인가? 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상하 관계는 아닌 듯 했다. 나는 나의 질문으로 인해 후안이 그들의 관계를 언어로 확정짓기를 바라지 않았고, 무슨 관계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둘을 세상에 몇 없을 동반자적 친구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후안은 우리에게 값진 경험을 주었다. 후안의 집에서의 며칠 동안 자본주의 사회에 던져진 원주민의 생활과 고민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바퀴벌레가 가득한 흙집에서 잠을 자는 것도, 강물에서 발가벗고 샤워한 것도, 커피콩을 커피나무에서 직접 따본 것도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다. 후안은 신성한 땅에 우리를 초대해서 그곳에 등록시켜 땅의 가호가 우리에게 함께하도록 해 주었다.

 

후안과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는 못했다. 후안은 산 속에서 산과 교감을 나누다 제시간에 내려오지 못했고, 우리는 그 전에 떠나야 했다. 다음에 만나면 후안은 분명 ‘소파 뻬~로’ 라고 할 것이다.

 

2017-08-16T23:22:25+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