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이야기 – 후안네 집에서의 생활

 

< 숙소 >

 

우리는 후안네 집 거실에 짐을 내려놓았고, 후안은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사라졌다. 짐을 거실에 놔두고 어디로 옮겨야 할지, 우리가 어디에 묵게 될지 모른 채, 집 안밖을 서성거렸다. 막내동생이 커피나무에서 커피콩 따는 걸 돕기도 하고, 꼬맹이들에게 괜히 친한 척 하기도 했다. 결국 어스름이 찾아와서야 후안이 나타나 우리의 숙소를 소개시켜줬다. 집 마당에서 수미터 나무를 헤치고 가니, 마당에서는 보이지 않던 집에 나타났다. 위 사진이 그 집이다. 후안은 이곳에 일본인 사토시가 묵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집을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었나 모르겠다만, 실제 자본 적은 없다. 이 건물은 내가 경험한 가장 구시대적인 건물이었다. 초가지붕, 창이 없는 흙벽, 난방이 없는 흙바닥이었고, 이격이 제대로 맞지 않는 나무 문을 열면 입구의 폭과 높이가 어깨와 고개를 움츠려야 지나갈 수 있었으며, 안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퀴퀴하고 컴컴하고 서늘한 것 까지는 참을 만 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  온몸이 오싹했다.

 

오케이, 오케이..   캄 다운..    그냥 벌레야..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생각이란 걸 해보기 위해 억지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바퀴벌레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하고 안면몰수하고 당장 이 집을 떠날 것인가? 안그래도 후안의 엄마가 낮에 벌레퇴치약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우리는 그걸 모기라고만 생각하고 모기약을 사왔다. 모기약 정도는 맛있게 먹을 것 같은 커다란 바퀴벌레일 줄은 몰랐다. 진정한다고 했지만 내 얼굴에 겁먹은 것이 다 드러났는지, 후안의 엄마가 대책을 세워 주셨다. 예전에 자신의 친구가 준 조그마한 텐트가 있다며, 텐트를 그 건물 안에 치고 자라는 것이었다. 무챠스 그라시아스!! 후안의 엄마는 정말 고마우신 분이다.  후안네 집에서 우리를 이해할 수 있고 배려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퀴벌레가 몸을 기어다니는 경험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고 다시 저 집 안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면, 들어가면 바로 잠들 수 있는 상태가 될때까지 좀 더 기다렸다. 저 집을 들어서면 바퀴벌레가 샤샤삭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잽싸게 텐트 지퍼를 열고 텐트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닫았고, 지퍼 틈을 테이프로 막아 버렸다. 누워 있을 때 바퀴벌레들이 텐트 위를 기어다녔다.

 

떠나는 날 짐정리를 할 때, 가방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 결국 가방의 모든 내용물을 꺼내 탈탈 털었다. 이 집에서 고생했지만 정은 안들었다. 누구보다, 이곳에서 버틴 아내에게 경의를 표한다.

 

 

<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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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왼쪽이 첫째 고르도, 그 오른쪽은 둘째 다니엘, 가장 오른쪽이 셋째 레이데르, 가운데 여자애가 넷째 수라이이다. 후안네 남매의 자녀들인데, 누가 누구의 아이인지는 모른다. 남자애들끼리 하루종일 공차기, 뜀박질을 하면 놀았고 , 여자애는 인형과 놀거나, 세나이다와 함께 놀았다. 세나이다는 아래에 따로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사진의 그날은 집 근처의 강에서 놀다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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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장난을 최선을 다해 방어했다. 그간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해 몸이 약해진 건지, 아이들의 힘이 원래 이렇게 센 건지, 아이들은 내가 조절하면서 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허벅지까지밖에 오지 않는 강물에 빠져 죽을 것 같았다. 있는 힘을 다해 아이들을 멀리 밀어냈고, 아이들은 신나서 나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이 놀이를 한참 동안 했고, 내가 완전히 지쳤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수중 공놀이를 시작했다.

 

넷째 수라이는 아직 학교 갈 나이가 아니고, 나머지 셋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과자를 사먹는, 도시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집에서 하얀 옷을 입고 생활하는 부모님을 볼 테고, 티비와 학교에서는 청바지를 입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아무래도 살아가면서 이 아이들에게 여러 고민이 있을 것 같다.

 

 

< 세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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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이다. 그 아이는 항상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는 흙집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밖이 얼마나 밝은지 알 수 없지만, 새벽인 즈음한데 밖에서 척! 척! 하는 소리가 났다. 세나이다가 돌에 빨래를 치면서 땟물을 빼내는 소리였다. 빨래가 끝나면 바닥을 쓸었다. 청소가 끝나면 요리를 했다. 후안의 엄마가 세나이다에게 이런 저런 일들을 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하지만 세나이다는 첫째 고르도보다 커보이는 데도 집에 남아 있었다. 세나이다가 이 집에 어떻게 있게 된 건지 짐작은 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중에 아이들과 이름쓰기를 하다가 세나이다의 이야기를 얼핏 듣게 되었다. 세나이다의 성만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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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이다는 시에라 네바다 산골에 살던 아이이고, 지금 이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다. 몇십년 전 우리나라 시골 어린 여성들이 도시로 나와 식모살이를 하던 그것과 같다. 세나이다를 보는 마음이 짠했다. 후안과 함께 시골 농장에 갔다가, 그 농장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아루아코인을 봤었다. 조그마한 흙집 안에 아궁이가 함께 있었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갓난아기를 포함해 네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돼지와 닭들이 집 안을 드나들고 있었다. 세나이다는 그런 집에서 생활하다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까?

 

아이들과 강에 놀러갔다 오는 길에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것에 샘이 난 세나이다는 아내에게 본인 사진도 많이 찍어달라고 했다. 이후 시내에서 사진을 몇 장 인화해 갖다 주었는데, 고마워할 거라 생각했던 세나이다는 되려 본인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데 이것 밖에 갖고 오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본인 사진을 가질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기회인데 많은 사진을 간절히 바라다가 좌절되어 그랬던 걸까? 콜롬비아 시골마을의 인화가격이 얼마나 비싼지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세나이다에겐 설명이 되지 않았다.

 

 

< 후안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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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의 엄마가 실을 짜고 계신다. 저 실은 후안 남매의 옷이 될 것이다. 후안의 엄마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도시사람인 우리를 이해하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걸까? 후안의 엄마는 우리의 바퀴벌레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했고, 우리의 몸이 돌바닥에서 자기엔 익숙치 않으리라는 걸 이해했고, 약속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후안에 대한 답답함도 이해했다. 우리가 후안의 적극 추천으로 농장 같은 곳에 가기로 했었는데, 후안의 엄마는 거길 왜 가냐고 했었다. 그곳에 가보고 나서 우리는 후안의 엄마의 걱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후안보다 일찍 그곳에서 집으로 내려왔는데, 후안의 엄마는 그 미묘한 상황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후안의 엄마는 우리가 떠나는 걸 가장 아쉬워했고, 우리는 떠나는 날 후안 엄마가 일하는 병원에 찾아가 인사를 하고 떠났다.

 

 

< 다른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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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왼쪽이 후안의 큰 형이다. 가운데가 후안의 막내동생이고, 가장 오른쪽이 막내동생의 친구이다. 막내동생은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유학 중이다. 지금은 휴학을 하고 아루아코족 일을 도우러 이곳에 와 있다. 아루아코족의 상황을 홍보하는 브로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파란 티는 후안의 여동생이고 빨간 티는 그 여동생의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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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여동생의 남편은 아루아코족이 공동 운영하고 있는 커피공장에 우리를 견학시켜 주었다. 이곳에서는 양질의 커피를 생산했다. 그들은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유럽 등지의 커피 가게와 직거래를 했고, 판매량은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아내에게 선거부패로 사울이 선거를 진 상황, 아루아코족의 생활 같은 것에 대해 기사를 써줄 수 있겠냐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외신 기사가 콜롬비아 정부에 대응하는 데 있어 어떤 소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아루아코 개인이 아루아코족 전체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는 건가? 라는 희망감이 들었다. 사실 원주민 시장을 배출하려는 것, 한 달에 한번식 아루아코족의 수도에 콜롬비아의 모든 유학생이 모여 아루아코의 미래를 논의한다는 것에서, 아루아코족의 정치 판단력과 조직 능력에 대해 이미 매우 놀랐었다.

 

 

< 닭 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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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놀고 먹고 계속 밥만 축내기도 뭣했다. 하루는 우리가 요리를 해주겠다 했다. 우리가 할 줄 아는 요리는 닭죽 뿐이었다. 닭을 잘라서 통째로 넣고, 마늘과 감자, 마지막으로 양파를 넣고 끓이다가, 다 끓고 나면 계란을 풀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끝나는 요리이다.  사람 수보다 넉넉하게 닭을 사왔다. 솥이 작지 않았는데도 나눠서 끓여야 했다. 야채를 다듬는 데 첫째 아이 고르도가 도왔고, 불을 지피고 관리하는 데 세나이다가 적극 도왔다.

 

위 사진이 주방이다. 나무로 불을 지폈다. 생각보다 끓이는 데 시간이 걸렸고 해가 져버렸다. 랜턴으로 비춰 가며 열심히 끓였다. 닭이 삶기자 꺼내어 분해한 뒤 다시 넣어 끓였다. 다 끓은 것 같아, 접시로 퍼내어 방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몇명이지?’ 라고 물어보자 세나이다가 ‘열셋..넷?’ 이라고 했다. 열넷..?  생각보다 많아졌네 누가 온건가…    잘 나누어 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양이 많아 다른 곳에 부어둔 물을 다시 부어 끓였고, 다시 접시에 나눠 담았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접시나 나갔을까..? 열넷은 훌쩍 넘긴 듯 했다. 배불리 먹고 남길 만큼 사왔는데, 다 퍼냈다. 우리가 먹을 그릇이 겨우 남았다. 누가 온걸까? 우리가 요리하는 양을 보고 남을 것 같아 후안이 부른 사람들인가? 우리가 요리하는 데 후안은 잠깐 와서 닭다리를 맛있게도 집어먹고 사라졌다. 드디어, 다 끓여서 퍼내고 우리가 먹기 시작했는데, 그 즈음에는 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굳이 누가 왔는지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우리는 아마 후안네 일가 친척 잔치상을 해낸 게 아닌가 싶다.

 

2017-08-16T23:21:3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