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로 가는 비행기는 직항이 없다. 직항이 있어도 아마 환승 비행기를 탔을 테지. 우리에겐 돈보다는 시간이 남으니까. 도쿄 나리타, 미국 LA, 달라스를 거쳐 파나마에 도착했다. 달라스에서는 공항을 나와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파나마행 비행기를 탔고 서너 시간 날아 파나마 공항에 도착했다.

 

피로했다. 영원할 것 같은 비행기 실내의 웅웅거리는 소리와 닭장 좌석을 벗어났다. 입국 절차를 거쳐 파나마에 들어섰다. 표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수동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나오는 짐을 받아 어깨에 들쳐 맸다. 자, 이제 우리는 위험, 불확실성, 자유, 무질서 같은 것들의 대명사 같은 중남미 땅으로 나가기 직전이었다.

 

국제공항은 어디나 세계화되어 있고 공항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과는 단절되어 있다. 인디라 간디 인도 국제공항에서 공항전철을 타고 뉴델리 시내로 나서던 저녁이 떠올랐다. 뉴델리 전철역 건물 안과 밖을 나누는 가상의 경계, 두께도 없는 그 면을 통과하는 순간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하는 듯 했다. 소, 개, 달구지, 인력거, 자동차가 자신만의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고, 온갖 소리가 모든 방향에서 들려왔고, 인도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어디로 갈건지 몰라도 자신이 안내 해주겠다고 재촉했다. 그날 택시는 내가 본인이 연결해주는 호텔로 가려고 하지 않자 한밤에 날 엉뚱한 곳에 내려주었고,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모를 위험에 대한 상상에 땀흘리면서 종종 빨리 걸어 숙소를 찾아 헤맸었다.

 

파나마 시티 국제공항을 나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탄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서야 하는 건 아닐까? 공항에서 피자를 먹으며 인터넷 세계에서 파나마 시티가 안전한지 검색했다. 인터넷은 ‘조심해야 한다’고만 했고, ‘안전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오늘 묵을 호텔은 예약해 두었으니, 우리의 당면 과제는 그 호텔에 도착하는 것이다. 개인택시, 승합택시, 버스 여러 방법이 있었다. 상상력은 있지도 않은 위험을 만들어냈다. 개인택시는 우리를 고속도로에서 던져 버리고 짐만 들고 가버릴 것 같았다. 승합택시는 승객들이 짐을 들고 뒤뚱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가방을 칼로 슥 긋고 내용물을 훔쳐가 버릴 것 같았다. 버스로는 우리가 원하는 곳에 내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때 내가 정보부족에 따른 안전과민증이었다는 건 나중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공항에서 갈길을 찾아 두리번대고 있을 때, 아나를 태운 비행기는 서서히 하강하며 활주로 방향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었을 것이다. 아나의 엄마는 아나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와 있었고, 아나 엄마의 친구도  함께 나와 있었다. 우리는 아나 엄마의 친구에게 시내로 가는 버스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나 엄마 친구분은 버스는 사람 탈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옆에서 대화를 보고 있던 아나 엄마는 우리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아나 엄마는 영어를 할 줄 모르지만, 우리를 도심까지 태워주겠다고 친구분을 통해 전달했다. 그렇게 우리는 구원받았다. 안전한 세계가 공항에서부터 아나 엄마의 차를 통해 호텔까지 연장되었다. 잠시 후 아나가 도착했고,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세계가 만나는 순간이다. 우리의 유전자와 아나네 유전자가 바다생명에 잉태되고 최초로 개별성을 갖게 된 이후로 생성되고 복제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서로 스쳐지나갔던 적이 있을까? 아나 엄마의 호의로 두 세계가 겹쳐졌고, 파나마 도심을 가로지르는 차 안에 함께 타고 달리고 있었다. 여느 두 사람이 만나면 각자의 세계가 겹쳐지면서 오해와 이해를 통해 서로의 세계가 넓어져 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외국인과 만나면, 두 세계가 만나는 상상을 시각적으로 하게 된다. 수학 교과의 ‘집합’ 부분에 나오는 그림인데, 두 원의 겹쳐진 부분에 빗금이 쳐져 있는 그림이다. 아나와 나의 세계는 인종적, 문화적, 역사적, 언어적으로 교집합이 없다. 나의 선조와 나의 탄생과 성장의 역사와 아나의 역사는 서로 기웃거린 적도 없이 멀리서 별개로 이어져 왔다. 그렇게 완전하게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더더욱 두 세계가 만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 것이다.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우연을 경험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미리 연락해 두었던 우리 스페인어 선생님이 바로 아나 엄마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서로 연락없이 가서 이야기 나누고 자고 오는 절친이었다. 아나 엄마의 호의가 만남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우리가 아나 엄마의 친구이자 스페인어 선생님에게 썼던 메일이 두 세계간의 최초의 신호였던 셈이다. 놀라움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빵 터지려는데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짧고 짠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우리의 허름한 호텔로 들어섰다. 호텔 라티노. 습한 냄새, 어두컴컴한 복도, 들어가 있으면 되는 거지 라는 식의 가구배치, 카드로 문틈을 슥 긁어면 문이 열릴 것 같은 구식 시건장치, 광광 소리나는 구식 에어컨에 눅눅한 침대, 그래도 옥상에 수영장이 딸려 있는 우리의 첫 숙소다.

 

 

2017-08-20T14:00:18+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