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Valle – 파나마 시티 근교 분화구 마을, 첫번째 이야기

 

아나네 이모의 별장이 그곳에 있다고 했다. 친이모가 아니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아나는 엄마의 절친이기도 한 스페인어 선생님 아우렐리스를 이모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 그대로 지칭했다. 하지만 아나는 친이모가 아닌 그분?을 이모라고 불렀다. 아나 엄마와 이모는 폭풍 같던 젊은 시절을 함께 지나치고 고요해지는 인생을 함께 바라보는 사이…같다고 별 이유없이 그리 생각했다. 아나 이모의 아버지는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운동가로 감옥을 드나들었고, 아나네 외가쪽이 이모의 아버지를 지원해 주었다고 하니, 양 가족 전체가 겪었을 고단함이 있었으리라 짐작되고, 그런 상황을 청소년기부터 함께 지나쳐온 아나네 엄마와 이모는 그날의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두분다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아나는 이모의 별장이 파나마 시티 근교에 있다고 했다. 그 지역의 이름은 El Valle 이다. 아나가 이모에게 주말에 그곳에 보내도 되는지 물어본 것 같다. 이모는 주말을 그곳에서 같이 보내자 하셨고, 우리도 함께 와도 좋겠다 하셨다고 했다.

 

끊임없이 얻어먹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요리를 대접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둘다 요리는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간단히 할 수 있는 요리를 생각했다. 김밥과 해물파전이었다. 최초로 시도하는 요리를 처음 본 사람에게 대접하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 처음 본 사람이 김밥과 해물파전의 본래의 맛을 모르니 상관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다만,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섞어 열을 가해 한군데 뭉쳐져 탄생할 그 물질이 맛은 차치하고서라도 먹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출발 몇일 전에 파나마의 유일한 한인 마트에 다녀왔다.

 

 

그곳은 아나네 집에서 차로 두어시간 거리였다. 아나네 엄마가 운전을 하고, 이모가 조수석에 타고 우리와 아나가 뒷좌석에 앉았다. 가는 길에 돼지고기 숯불구이집에서 점심을 먹고, 슈퍼에 들러 찬거리를 사고, 특산품시장에서 내 생애 최초로 생 코코넛 물을 마셔 보았다. 좀 지친다 싶을 때쯤 이모네 별장이 있다는 마을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부유함이 느껴졌다. 별장으로 가득찬 동네였다. 가로수가 정연하게 심겨져 있고, 직선으로 뻗은 잘 포장된 도로가 별장 사이를 갈랐다. 별장 하나하나가 큰 정원을 갖고 있었다. 들여다보지 못하게 높은 벽으로 둘러져 있는 평창동의 안쪽이 저럴까 싶었다. 어떤 별장에는 호수같은 연못이 있었고 오리들이 놀고 있었다.

 

 

아나네 이모의 별장은 이 동네 깊숙이 들어가 가파른 언덕을 반쯤 올라간 곳에 있는 집이었다. 그곳은 언덕에 있어 최고의 전망을 가진 집이었다. 그곳에서는 이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이 분화구라는 걸 볼 수가 있었다. 그 가파른 언덕은 사실 분화구의 경사면이었다. El Valle는 분화구 가운데에 놓인 마을이었다. 이모네 별장 관리자가 나와서 이모에게 인사했다. 어쩐지 별장이 사람이 비운 티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소파와 쿠션이 야외에 깔끔한 상태로 놓여져 있는 것이 신기했는데, 아마 아나네 이모가 오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관리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 별장에는 마을을 조망할 수 있도록 경사면 쪽으로 바라보는 커다란 원형 욕조가 있었다. 날이 맑지 않고 쌀쌀해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들어가 보았다. 분화구 마을의 개인 별장에서 따뜻한 물이 채워진 욕조에서 아래를 조망한다, 이런 호사는 생애 처음이다, 앞으로도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 부러움이나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 불편했다. 론니 플래닛에서 파나마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번째로 불평등한 나라라고 한 것이 떠올랐다. 이 부유함이 누군가에 대한 억압이나 빈곤함에 기대어 있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일은 이 나라의 불평등을 고민하기보다는, 우선 받은 것에 대해 보답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음식을 만들었다. 김밥과 해물파전 만드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양과 간을 맞추는 모든 절차에서 확신이 없었다. 아주 긴 시간을 걸쳐 만들었다. 진수성찬을 내 놓지 않으면 대접받는 사람이 되려 화낼 수 있을 만한 시간이 흘렀다. 야참이라 할 만한 시간이 되어서 완성이 되었다. 한국적인 기준으로 그 음식이 김밥과 해물파전으로서 ‘완성되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우리의 최선의 상태에서 내어 놓았다. 우리는 그나마 김밥이 먹을 만하다 생각했다. 아나네 이모는 그 기름진 해물파전을 괜찮다(really good) 평해 주셨고, 아나네 엄마는 피곤하신지 별 말씀 없으셨다. 우리는 어쨌든 뭔가를 했다는 데 위안을 찾았다.

2018-02-04T16:58:2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