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근교 도시 El Valle 두번째 이야기

 

 

 

 

일어나서 집사(?)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밥과 파타고네스, 나물이었다. 파타고네스는 큰 바나나 같이 생겼는데, 그걸 썰어서 튀기면 심심하면서 밥을 씹을 때처럼 달달한 맛이 난다. 남미 다른 지역에서는 한국의 밥처럼 파타고네스를 기본
주식으로 두고 다른 양념된 요리를 곁들여 먹었다. 나물은 정신이 번쩍 들도록 짰다. 전날 우리가 만들어 대접한 김밥과 파전이 너무 맛이 없어서 일부러 답례차 소금을 부어 넣었나 싶을 정도로 짰던 기억이 나는데, 입맛에 맞느냐는 아나네 이모의 제스쳐에 우리는 아마 맛있게 음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당시 나의 소통은 스페인어 5%와 제스처 95%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스쳐가 담아낼 수 있는 의미의 폭이 너무 좁아서 제스쳐로 이뤄지는 소통은 한계가 뚜렷하다. 나는 ‘물 줘!’ ‘다리 아파!’ 정도만 전달하고자 하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세상사의 다양한 결을 느끼고 있고, 음식을 ‘맛있다’와 ‘맛없다’로 둘 중 하나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 나물이 짜긴 하지만 신선한 느낌이 있네요’ 라고 대답하고, ‘신선하다는 걸로 맛없다는 말을 하는거니?’ 라고 아나네 이모가 물어보시면 ‘아니요 맛없다고까지 하진 않았어요’ 라고 대답하는 그런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나네 이모는 금발에 키가 크고 눈빛이 대담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와 어조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따뜻한 카리스마의 섬세한 결을 자세히 이해하기에는 소통을 이어갈 단어가 부족했다.

 

 

 

 

집에서 쉬겠다는 아나를 두고 우리는 마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초로 엘 마초’라는 폭포이다. 번역하자면 ‘남자의 눈물’이다. 그 이름이 명명된 배경에는 남미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있다. 전통부족 남자와 스페인계 여성 간 연애 이야기이다. 침략자이자 지배계급인 스페인계 여성과 피해자이자 피지배계급이고 인종이 다른 남성 사이의 사랑이 순탄할 리 없다. 여성의 아버지가 극렬 반대했고, 좌절한 여성은 그대로 주저앉아 산이 되어버렸다. 그 아버지는 딸을 잃은 슬픔에 그 산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우리가 가려는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아나네 이모집에서 한시간여 걸어서 폭포에 도착했다. 아버지의 슬픔이 부족했던 것일까? 눈물을 흘리려다 참은 것처럼 졸졸졸 흘러내리고 있었다. 설화를 음미하며 아버지의 슬픔을 공감해보는 시간을 갖기에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경쾌했던 기억이다.

 

 

 

 

야외 수영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영복을 챙겨왔다. 이곳 분화구 마을 엘 바예는 파나마 도심보다는 시원했지만 여전히 더웠고, 폭포까지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가느라 삐질삐질 땀이 났다. 야외 수영장은 그 폭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금방 수영장 입구를 찾았다. 그곳은 산 중턱이었고, 입구에서부터 수영장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 산길이었다. 이곳에 있는 수영장이 한강 야외수영장 같진 않겠구나 생각했다. 예상 외로, 도착한 그곳의 수영장은 한강 야외수영장보다 훨씬 자연적이고 감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개울물을 곡선형 공간에 받아 놓고, 한쪽으로는 그 개울물이 계속 흘러내려가도록 해두었다. 물 깊이는 겨우 발이 닿는 곳도 있고, 키를 넘기기도 했다. 실개천이 흘러들어와 큰 수영장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수영장에서는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숲이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고, 물에서는 폭포 위에서부터 훝고 내려온 풀의 기운이 느껴졌다.  물 교체 고민은 필요없는 수영장이었다. 소독약 가득한 물을 사각형 틀에 집어넣어 놓은 수영장과 이 수영장의 차이는 사회가 갖고 있는 성격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닭과 오리떼가 우리를 향해 질주해오는 경험을 했다. 생각보다 위협적이고 당황스럽다. 일제히 우리 방향으로 코앞까지 달려온 닭 오리떼는 갑자기 평온을 찾더니, 본래 닭들이 그렇듯 개별적이고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땅을 쪼아대고 발을 옮겼다. 다른 언어를 쓰는 인간과도 소통이 힘든데, 닭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하기는 무리인 것 같다.

2018-01-14T18:26: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