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카스 델 토로

 

 

보카스 델 토로는 나와 아내가 불확실성의 중남미 대륙에 홀로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시작한 곳이다. 중남미 대륙에서 처음 땅을 디딘 곳은 파나마 시티 국제공항이지만, 그곳에서 바로 아나를 만나 아나네 집에 얹혀 살면서, 보카스 델 토로에서 아나와 헤어지기 전까지는 아나의 보살핌 속에서 먹고 자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아나는 보카스 델 토로에서 우리와 함께 몇박을 함께하다가 파나마 시티로 돌아갔고, 우리는 몇박을 더 하면서 보카스 델 토로도 더 둘러보고, 코스타리카로 향하는 계획도 세웠다.

 

 

 

 

아나가 돌아가고 난 뒤, ‘우리만 남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색깔이 다른 두가지 느낌이 혼재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해방감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모국어로만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침묵하는 시간이 필요한 성향의 사람들이다. 덜컥 함께 살게 된 아나와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어렵고 무슨 말이든 해야할 것 같았는데, 아나와의 긴 동거가 끝나면서 침묵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장함이다. 내 상식이 이곳에서 몰상식은 아닐지 확신이 없고, 친절일지 위협일지 판단할 능력이 없었는데, 어찌 됐든 나와 아내 둘이서 하루하루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장함이었다. 이 두가지 느낌은 묘하게 잘 어울려서, 나는 자유롭고도 비장한 마음으로, 곁에서 함께 해줄 아내에게 깊은 연대를 느꼈다.

 

 

 

 

보카스 델 토로는 파나마의 휴양지이다. 나와 아내는 보카스 델 토로가 지리적으로 코스타리카와 접해 있다는 사실만 알고 보카스 델 토로행 버스를 탔다. 우리는 파나마에서 코스타리카로 갈 예정이었다. 보카스 델 토로가 정주생활에서 유목생활로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선뜻 따라온 것 치고 보카스 델 토로는 내 생각보다 훨씬 유명한 관광지였다. 그곳은 에메랄드빛 캐리비안 바다에 산림이 풍부한 작은 섬들로 이뤄진 군도이다.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관광인프라도 충분했다.

주도인 콜론 섬에는 작지만 국제공항이 들어서 있고, 다른 섬들과 수상택시가 오갔다. 걸어다니기엔 넓은 편인 주도에서는 버스도 운행했고, 자전거 대여 서비스도 있었다. 먹거리를 살 수 있는 큰 슈퍼도 있었고, 음식점도 많았다. 또 메인 거리에는 여행사들이 무인도 방문, 스노클링 같은 액티비티를 결합한 여러 관광상품으로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열심히 호객했다. 유명 관광지 답게 물가가 저렴하지는 않았는데, 반면 유명한 것 치고는 섬이 여유롭고 한가했다. 아마 평균적인 파나마 현지인에겐 물가가 높아 놀러가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현지인은 군도 쪽이 아닌 물가가 저렴한 육지쪽에 살면서 군도 쪽으로 출퇴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보카스 델 토로 군도에 들어가기 위해 파나마 육지쪽 항구인 알미란떼에 도착했을 때 레게머리를 하고 건들건들대고 있는, 사기꾼 스타일 아저씨가 아나를 반겼다. 아나에게 다가오는 아저씨를 순간적으로 밀쳐 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건들거렸다. 아나에게 들어보니 아나 일가가 이 아저씨에게 이 일대의 여행을 맡긴다 했다. 인상이 매우 사기꾼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전문사기꾼은 사기꾼처럼 꾸미지는 않을 것 같고, 아나네 일가와 연이 있었으니, 일단 믿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나네 일가와 그 사기꾼과의 연을 끊어버리게 된 것 같다. 뭐..   큰 공사를 하시는 사기꾼은 아니고, 좀도둑 수준이었다. 부유한 아나네 일가의 순진함과 정보에 대한 무지를 이용해서 저렴한 호스텔에 투척해두고 관광상품을 중계하고 수수료를 크게 받아드시는 분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슬쩍만 해 보면 비정상적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나네 일가는 몰라도 우리는 등쳐짐을 용납할 정도로 부유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나의 순진함을 일깨워주었고, 이후 일정 선택에서 그분을 배제했다. 앞으로 그분은 더이상 아나 일가를 등쳐먹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루는 투어로 무인도를 방문했다. 섬의 이름은 자파티야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자파티야 섬은 ‘그림같았다’. 한시간여 동안 섬을 한바퀴 걸었다. 섬은 나무가 울창해서 안쪽을 걷기는 힘들어 보였다. 다른 열대 섬들과 같이 야자수가 많았으나, 손바닥만한 짙은 초록색의 단정한 잎사귀를 무성하게 가진 키 큰 나무도 있었다. 그 나무는 가지를 해변쪽으로 길게, 바다에 잠기지는 않으면서도 내 허리춤보다도 낮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래서 해변을 걸어갈 때 나무가지를 넘거나, 허리를 깊게 숙여야 했다.

나의 기억에만 남아있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어 안타까운, 아름다운 몇 초의 시간에 조금 벅찼다. 해가 비치는 방향으로 시야를 가득 채운 무성한 잎사귀들의 윤곽이 빛났고, 에메랄드빛 바다로부터 흰 파도가 잎사귀들 아래로 조용히 들어왔다. 나무를 조심히 넘어오는 아내의 실루엣이 보였다. 시신경을 타고 들어온 그 몇 초의 시간은 뇌세포에 영원같이 각인되어 있을 것 같다.

섬을 한바퀴 도는 동안 몇몇 사람을 지나쳤다. 우리처럼 투어를 온 사람일 것이다. 보통 서양인들이 해변에서 그렇듯, 하얀 모래 뜨거운 태양 이글이글 작렬하는 해변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책을 읽거나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나를 무심코 따라간 또다른 투어에서 꿀 같은 체험을 했다. 모터보트를 타고 망그로브 수림을 헤쳐 들어가 허름한 나무 데크에 배를 대어 내렸고, 이어서 나무가 울창하고 바닥이 질척질척 발을 잡아당기는 밀림을 이십여분 걸어 들어갔다. 한 바위동굴 입구가 나왔다. 머리에 끼우는 랜턴을 나눠주었다. 미처 마음이 준비되기도 전에 동굴로 들어섰다. 빛은 랜턴 뿐이었다. 랜턴이 가리키는 조그맣고 희미한 회색 동그라미 외에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바닥은 개울인지 못인지 모르겠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나아가는 동안 깊이는 무릎부터 가슴께까지 들쭉날쭉했다. 어둠 속에서 깊이도 모르는 바닥을 조금씩 발로 더듬어가면서 나아갔다. 무심코 올라본 천장에는 수많은 박쥐가 대롱대롱대고, 무작위한 방향으로 날아다녔다. 물이 위에서도 떨어지고 아래서도 튀어올랐다. 선두의 가이드는 지체 없이 앞으로 쭉쭉 나아갔고, 나는 정신없이 따라갔다. 그 어둠과 차가움과 불확실성은 위협적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분이 있었다. 동굴의 끝에는 깊은 못이 있었고,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이 높은 바위에서 그곳으로 뛰어내려볼 시간을 가졌다. 사실 그 못은 바닥의 구멍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계속 연결된다고 했다.

 

 

 

 

우리는 보카스 델 토로에서 서핑을 다시 시도했다. 인도네시아 롬복 섬에서 최초로 시도할 때, 파도에 통돌이를 당하고 팔에 힘이 다 빠져서 탈진을 경험한 후 서핑은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아내가 당첨된 양양에서의 무료 서핑 맛보기 체험에서 그 다짐이 많이 허물어졌다. 아마 그날 양양에서 파도가 한점도 없어 과거 탈진했던 기억이 흐려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핑 가는 날 아침 비가 와서 불안한 나에게, 강사가 “When It’s raining, surfers go surfing” 라는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말을 했고, 배를 타고 서핑포인트로 갔다. 지금 돌이켜보기에, 그곳의 파도는 서핑을 두 번째 시도하는 왕초보에게는 절대 부적절하다(중급자 이상에게는 매우 좋은 곳인듯 하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통돌이와 탈진의 경험을 했다. 이렇게 내 서핑경험의 초반부가 좌절로 이뤄져 있음에도 지금까지 서핑에 대한 노력과 그리움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 참 용하다.

 

 

 

 

우리는 그 섬에 일주일여 동안 머물렀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갈 수 있는 해변까지 달려가 봤다. 그깟 자전거 반납시간 지키겠다고, 목말라 죽겠으니 돌아오는 길에 물 사먹고 가자는 아내의 간청을 외면했다가 대판 싸웠다. 버스를 타고 잔잔하고 투명한 불가사리 해변에 갔고 돌아오는 길에 석양을 봤다.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카약을 타고 패들보트를 탔다. 아나와 맛있는 저녁을 해먹었고, 아나와 헤어짐의 시간을 가졌다. 아나와 헤어지고 난 후 옮긴 저렴한 호스텔에서, 우리 최초의 양념 닭요리를 해먹었다. 어쩌면 우리를 위한, 우리에 의한, 우리의 여행 최초의 요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보카스 델 토로에서, 아나와 아나네 엄마가 그렇게 위험하다고 한 코스타리카로 향하기 전, 긴장과 여유의 준비시간을 보냈다.

2018-01-14T21:35:03+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