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우이따 Cahuita

 

 

파나마는 미국대륙으로의 첫 도착지이고 오랜 기간 머무르면서 안정감을 제공해주었다. 파나마를 떠나 처음 머무른 도시는 파나마-코스타리카 국경에서 버스로 한두시간 거리에 있는, 해변의 작은 마을이었다. 이름은 ‘Cahuita 까우이따’ 이다. 까우이따는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치면 여행자로서 의무를 해태하는 듯한 죄책감?을 갖게 되는 그런 관광명소는 아니다. 우유니 사막이나 이과수폭포 같은 곳이 그런 곳이다. 그래도 까우이따는 론니 플래닛에 이름이 올려져 있으니, 갈길을 서두르지 않는 여행자라면 멈춰볼 수도 있는 곳이다.

 

 

 

 

우리가 파나마에서 코스타리카로 건너갈 때, 우리의 상태는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과 비슷했다. 백지 어딘가에 점을 찍어야 했다. 우리에겐 이동방향을 결정하는 데 참고할 만한 기준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뭘 보고, 뭘 하고 싶어하는지 잘 몰랐고, 기준이 될 만한 기존 궤적이 없었다. 앞으로의 여정이 1년이고 어디를 거쳐 어디에서 출국할지도 미정이었다. 그 중 첫 날의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가 까우이따를 찍게 된 건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단은 한발을 조심히 디뎌보는 것이다. 아나가 도둑이 들끓는 곳이라면서 우리가 가는 걸 계속 걱정하던 코스타리타의 수도 산호세로 직행하기는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그곳은 파나마 보카스 델 토로에서 흥미(?)를 갖게 된 서핑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까우이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검은모래 해변이다. 우리를 검은모래 해변으로 데리고 간 사람은 빛나는 까만 피부에 웃을 때 빛나는 하얀 치아가 드러나는 서핑 강사 띠또이다. 서핑샾에서 해변입구까지는 돌길 몇백미터를 걸어가야 한다. 척 봐도 건강미가 넘치는 띠또는 서핑보드를 들고 맨발로 잘도 걸어갔다. 나는 서핑보드를 들고 띠또를 따라가는데 발바닥 고통 때문에 머리가 쭈뼛쭈뼛했다. 걸어가는 길 해변 쪽으로는 나무가 울창해서 해변이 보이지 않았다. 숲의 밀도가 옅어지자 해변이 나타났다. 준비운동을 하고 바다로 들어갔다. 보드에 엎드려 균형을 잡았고, 파도가 오는 타이밍에 맞추어 띠또가 밀어주는 힘을 느끼며, 띠또의 구령에 맞추어 머리를 들면서 일어섰다.

 

 

 

 

 

나의 온 시야는 검은모래 해변으로 가득 찼다. 작렬하는 태양이 해변을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흰 파도에 실려 해변으로 들어갔고, 바라보는 방향에는 검은모래 해변이 눈부셨다. 끊임없이 흰색 파도가 검은모래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검은 모래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거리는 입자들이 섞여 있었다. 보는 각도, 물이 들고 빠짐에 따라 고급스러운 짙은 보라색, 남색, 회색을 띄었다. 해변 뒤로 생명력을 자랑하듯 짙은 녹색 이파리들을 무성히 가진 굳건한 갈색 나무들이 벽을 이루고 있었다. 해변에 도달해서 서핑보드에서 뛰어내려 뒤로 돌아보니 하늘을 파랗고 바다는 햇살에 눈부셨고, 저 멀리 띠또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나를 독려했고, 그의 검은 피부와 새하얀 치아가 같이 빛났다. 이 빛나고 짙은 색감, 이것이 남미의 색감인가? 뜨거운 햇볕처럼 강렬했고, 새로운 이미지의 발견이었다. 끝없는 흰 파도와 그것을 끝없이 받아내고 있는 검은 모래, 신화의 배경이 되기 좋은 그림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나무늘보가 와서 머물다 가곤 하는 놀라운 곳이었다. 처마 밑에 붙어있는 나무늘보가 자고 있었다. 사실 자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멈춰 있었다. 처음 봤을 때 나는 섬세하게 제작된 인공물로 생각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저 숲에 사는 나무늘보인데 가끔 나무를 타고 와서 저렇게 있다고 했다. 흠…  나무늘보가 집에와서 자고있는게 그냥 그러고 있다고 평온히 설명하면 될 일인가..? 아주머니가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것이 놀라웠다. 나의 집을 종종 찾아와 주는 동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웃겼던 에피소드가 있다. 환전을 위해 은행에 방문했을 때였다. 햇볕이 정말 뜨거웠고,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다.
내가 들고간 선글라스에는 도수가 있었다. 실내로 들어서면서 선글라스를 벗고 싶긴 했지만 안경을 들고오지 않아서 그냥 쓰고 있으려 했다. 눈이 상당히 나빠서 안경이 없으면 환전하면서 숫자를 보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구에서 보안직원이 보안규정에 따라 선글라스를 벗어주길 요청했다. 나는 내 최선의 스페인어로 나의 상태를 전달했다. 내가 전달하고자 했더너 의미는 ‘이 선글라스가 없으면 잘 안보여요’ 였다.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보안직원을 보느라 눈을 찌푸리면서 ‘no puedo ver 나는 볼 수 없어요’ 라고 말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다. 잠시간의 판단의 시간 후, 보안직원은 나를 장님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외국인차별, 무례함에 대한 미안함, 당황스러움을 온 몸짓으로 표현하며 우리에게 어서 들어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는 그렇게 당당히 선글라스를 쓰고 환전을 했다. 그 와중에 내가 눈이 보인다는 명확한 느낌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을 나도 모르게 했던 것 같다.

 

 

까우이따에서 나는 앞으로의 여행에서 수없이 반복될 일들을 처음 시작했다. 손빨래, 요리, 산꼬초 국물 사먹기, 환전 같은 것들이다.

 

 

 

 

갖고간 종이세제를 사용해서 손빨래를 처음 시작했고, 곧바로 세탁기를 존경하게 되었다.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요리 중 하나인 닭요리를 수 시간을 걸려 가며 해서 먹었다. 닭손질, 마늘까기 등 생애 최초이지만 친숙하지 않은 조리도구들을 사용해서 최선을 다해서 담담히 했다.

 

 

 

 

가게에서 산꼬쵸 국물을 사먹었다. 앞으로 수없이 조금씩 다른 산꼬쵸를 먹게 될 것이었다. 가게에서 가격을 보면 머리 속에서는 자동으로 달러나 원으로 환산하기 시작했다.

 

 

 

 

작렬하는 햇볕에 얼굴이 벌개졌고, 조금 까매졌다. 앞으로 점점 더 검어질 예정이다.

 

 

 

 

주인아주머니가 깨준 코코아 흰속살을 씹어 먹었다. 이런 맛있는 속살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밤에 불빛이 있는 곳 근처에는 게꼬가 돌아다녔다. 게꼬는 언제나 귀엽다. 손가락 생김새, 우는 소리, 움직이는 동작 모두 귀엽다.

 

 

 

 

주인아주머니는 내 눈이 좋다며 본인의 눈을 쭉 옆으로 쭉 찢으며 내 눈을 흉내냈다. 앞으로 우리 흉내낸다면서 눈을 찢는 여러 아주머니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 시골 할머니들께서 흑인에게 피부가 정말 까매, 깜둥이 라면서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그런 류의 솔직함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2018-03-18T11:34:51+00:00